힙합과 아이돌의 결합을 최초로 제시하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⑥] H.O.T의 ‘전사의 후예’

소방뉴스 | 기사입력 2018/12/14 [10:56]

힙합과 아이돌의 결합을 최초로 제시하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⑥] H.O.T의 ‘전사의 후예’

소방뉴스 | 입력 : 2018/12/14 [10:56]

이수만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이돌과 케이 팝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논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힙합이나 흑인음악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논해도 그렇다는 사실은 함정이다. 이미 난 앞선 글에서 현진영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이수만이었음을 말한 적이 있다. 

 

▲ 2006년 2월에 열린 SM 엔터테인먼트 창립 10주년 기념 파티에서 소감을 말하는 H.O.T의 강타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수만 이사.(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유영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수만은 유영진을 가수로 데뷔시켰다.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는 한국 흑인음악 역사에 큰 의미가 있는 노래다. 1993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한국에서 정통 알앤비를 구현한 최초의 노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향기’는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 보다도 2년이 빨랐다.

 

이수만이 힙합이나 흑인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는 해외 대중음악의 선진적인 면모를 누구보다 발빠르게 흡수하고 도입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미국 유학 시절에 접한 ‘MTV’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의 아이돌 기획사 ‘쟈니스’도 마찬가지다. 즉, 해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제작자로서의 활동에 적극 활용했던 셈이다.

 

H.O.T 또한 이수만의 손에서 탄생했다. 1996년에 데뷔한 이 그룹은 한국에서 아이돌 시대를 개막한 존재로 평가 받는다. 물론 그 전에도 아이돌 성격을 지닌 가수들은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 산업의 본격적인 출발은 H.O.T의 데뷔와 함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 2001년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있는 H.O.T.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H.O.T의 데뷔곡은 ‘전사의 후예’였다. 우리는 이 노래를 아이돌의 관점 뿐 아니라 힙합의 관점으로도 조명해볼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전사의 후예’는 힙합과 아이돌이라는 두 관점을 동시에 조화롭게 언급해야 하는 노래다.

 

‘전사의 후예’는 자연스럽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을 떠오르게 만든다. 특히 사운드 면에서 그렇다. 두 노래 모두 베이스 솔로로 시작하며 시종일관 어둡고 둔탁한 사운드가 반복된다.

 

그리고 ‘Come Back Home’이 미국의 힙합 그룹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의 음악과 무관할 수 없듯 ‘전사의 후예’ 역시 사이프레스 힐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단적으로 사이프레스 힐의 ‘I Ain't Goin' Out Like That’이 없었다면 아마 ‘전사의 후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사의 후예’와 ‘Come Back Home’은 어째서 사이프레스 힐이라는 공통된 레퍼런스를 가지게 된 걸까. 어쩌면 ‘전사의 후예’가 ‘Come Back Home’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은 아닐까.

 

▲ 2012년 오스트리아의 노바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는 사이프레스 힐.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EPA)    

 

확실히, ‘전사의 후예’는 ‘Come Back Home’의 ‘아이돌 스타일 변주 버전’ 같은 노래였다. ‘Come Back Home’은 미국 갱스터 랩 그룹이 주로 활용하는 ‘사운드’는 빌려오되 가사는 ‘가출’ 문제로 바꾼 노래였다.

 

‘전사의 후예’는 그 기조를 유지하되 가사에는 살짝 변화를 줬다. ‘10대의 눈높이로 바라본, 당사자 관점의 학교폭력’ 문제를 메시지로 삼은 것이다. 그 결과 ‘전사의 후예’는 힙합의 특성을 아우르면서도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표출할 수 있었다.

 

힙합 사운드를 표방하면서, 의식적인 메시지를 지닌 동시에, 10대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던 노래. ‘전사의 후예’는 그렇게 기억되어 남았다. 한마디로 ‘전사의 후예’는 한국에서 힙합과 아이돌의 결합 모델을 최초로 제시한 노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이돌 시대를 개막한 그룹의 데뷔곡이 ‘힙합’이었다는 사실은 향후 여러 파급효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H.O.T 이후, 데뷔곡 주제를 문제적 학교교육으로 삼는 것은 남자 아이돌 그룹의 전통 비슷한 것이 되었다.

 

혹시 당신은 방탄소년단의 데뷔곡에 대해 알고 있나?

 

방탄소년단의 데뷔곡은 바로 ‘No More Dream’이었다. 힙합 사운드 위에서 학교교육에 짓눌린 청소년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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